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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짧은전쟁

by ok2_1081 2024. 7. 27.

1896년 영국-잔지바르 전쟁 중 잔지바르 타운에 있는 HMS 세인트 조지와 HMS 필로멜(잘라낸 사진) 잔지바르 위기, 술탄 궁전 포격에 가담한 영국 군함. 1896년 9월 5일자 Illustrated London News의 삽화. 잘리지 않은 원본

 

영국-잔지바르 전쟁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1896년 8월 27일 영국과 잔지바르 술탄국 사이에서 벌어진 군사적 갈등입니다. 이 전쟁은 38~45분 동안 지속되어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1896년 8월 25일 친영국 술탄 하마드 빈 투와이니의 의심스러운 죽음과 그에 따른 술탄 칼리드 빈 바르가시의 왕위 계승이었습니다. 영국 당국은 영국의 이익에 더 유리한 하마드 빈 모하메드를 술탄으로 선호했으나, 칼리드는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영국의 최후통첩을 무시했습니다.

8월 27일 오전 9시에 최후통첩이 만료되었고, 영국은 순양함 2척, 포함 3척, 해병대와 선원 150명, 잔지바르인 900명을 항구 지역에 집결시켰습니다. 영국군은 잔지바르 궁전을 포격하여 궁전과 방어 포병대를 무력화시키고, 궁전의 깃발을 격추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술탄 칼리드의 군대는 약 500명의 사상자를 냈고, 영국군은 단 한 명의 부상자만 있었습니다.

술탄 칼리드는 독일 영사관에서 망명을 받은 후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도피했습니다. 이후 영국은 술탄 하마우드를 꼭두각시 정부의 수장으로 세우며 잔지바르 술탄국의 주권을 종식시키고, 영국의 강력한 영향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배경

잔지바르는 탕가니카 해안에서 떨어진 인도양의 섬나라로, 오늘날 탄자니아의 일부입니다. 1698년부터 오만 술탄의 지배를 받아왔으나, 1858년 술탄 마지드 빈 사이드는 이 섬을 오만으로부터 독립시켰습니다. 1886년 영국은 잔지바르의 주권과 술탄국을 인정하고, 독일과 함께 동아프리카의 무역권과 영토를 두고 경쟁했습니다.

 

 

전쟁의 경과

1896년 8월 25일, 술탄 하마드가 사망한 후 그의 조카 칼리드 빈 바르가시는 영국의 승인 없이 술탄국을 주장했습니다. 영국은 이에 반대하며 칼리드에게 군대를 철수하고 궁전을 떠나라고 명령했으나, 칼리드는 이를 거부하고 궁전 경비병을 불러들여 바리케이드를 쳤습니다.

8월 27일 오전 9시에 영국의 최후통첩이 만료되자, 영국군은 궁전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포격으로 궁전이 불타고 방어 포병대가 무력화되었습니다. 술탄 칼리드는 독일 영사관으로 도피하였고, 그 후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망명했습니다. 전쟁은 45분 만에 끝났으며, 잔지바르 술탄국의 주권은 영국의 보호령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여파

잔지바르 남녀 약 500명이 전쟁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고, 대부분은 궁전을 휩쓴 화재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술탄 칼리드는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도피했으며, 영국은 술탄 하마우드를 새로운 술탄으로 세웠습니다. 이로써 잔지바르 술탄국의 주권은 종식되고, 잔지바르는 영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잔지바르 궁전 단지는 전쟁 후 크게 파손되었으며, 영국은 잔지바르의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궁전 부지는 정원으로 변했고, 새로운 궁전이 세워졌습니다. 영국은 잔지바르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며, 이후 67년 동안 잔지바르에서의 반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